제 14 화 : 올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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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야기는 한국 컴퓨터학원의 mjyp님이 보내주신 이야기를 각색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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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내일 춘천에 계신 엄마에게 윤희를 인사시키려고 합니다.

그런데 자꾸 마음 한 구석에서 '안돼'라고

소리치는 것만 같아서 기분이 안좋아요.

윤희를 엄마에게 데리고 가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요.

어쩌면 나의 어린 시절부터의 연속적인 사건 때문인지도 모르죠.

기억도 하기 싫은 그 날 아침 창 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함박눈이 메뚜기떼처럼 새까맣게 내리고 있었어요.

할머니가 뇌진탕으로 돌아가신 날이죠.

참  이상했어요.

보통때는 눈을 너무나 좋아했는데

그 날 아침에는 착 가라앉은 마음에 담담했습니다.

그 당시 내 나이는 7살이었어요.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뜨고 창 밖을 보니

눈이 펑펑 내리는데

뒷 마당쪽에서 할머니께서 빗자루를 들고

엄마에게 큰 소리로 욕을 하시며 꾸짖는 것이예요.

정말 지겨운 할머니의 저 잔소리가

눈오는 날 아침부터 또 시작된 것이예요.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엄마를 못 살게 하는 할머니가 난 정말로 미웠어요.

'이 년아 ! 서방을 잡아먹은 년아 !

내 일이 제삿날인데 아직도 제물 준비도 안하고... 네 이년아 '

내일이면 아빠가 돌아가신지 2년째되는 날이예요.

할머니는 아빠, 엄마의 결혼을 무척 반대하셨대요.

궁합이 안 좋다는 거예요.

점을 보고 왔더니 엄마에게 단명의 살이 끼어 있는데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엄마의 살을 대신 맞아

어느날 갑자기 죽어 버린다는 점괘가 나왔다는 거예요.

청상과부로 외동아들을 곱게 키워온 할머니는

절대로 결혼을 허락할 수 없다고 결사코 반대를 하셨대요.

그러나, 연애를 해온 두 분은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을 하신거예요.

할머니는 외동아들인 아빠의 결혼 후 거의 한달을 앓아 누우셨대요.

그 이후 사사건건 엄마에게 트집을 잡고 엄마를 못 살게 굴었대요.

엄마가 시집살이에 질려서 친정으로 도망을 가도록 한 것이죠.

마음이 고운 엄마는 혼자서 아빠 몰래 눈물도 많이 흘리시며

그 모진 시집살이를 견뎌내신 것이여요.

그러다가 내가 태어나자 할머니는 엄마를 며느리로 인정하고

구박을 덜 하시며 집안이 평화로와진 것입니다.

그리고는 몇 년간 꿈결처럼 행복한 시간들이 지나가던

어느날  아빠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었어요.

아빠가 밤 11시경 앰블란스에 실려가셨어요.

어린 나의 기억에도

아빠가 목을 잡고 온 방을 뒹굴며 괴로워 하시던

모습이 똑똑히 떠오릅니다.

급성 협심증에 의한 기도 협착증 심장마비라는

긴 이름의 병으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심장에 이상이 생겨 갑자기 숨을 쉬지 못하고

3-4 분후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할머니는 반 미친 사람처럼 아빠의 이름을 부르며

하루종일 우시곤 엄마를 볼 때마다

서방을 잡아 먹은 년이라고 욕을 해대셨어요.

거의 일년 간을 그러시더니

엄마가 온갖 모욕도 다 참으시며 할머니를 지극히 모시니

할머니도 좀 누그러지신 것 같았어요.

아빠 생각이 나실 때 간혹 엄마에게 욕을 해대시며

발작적인 고함을 지르시곤 하셨어요.

기억도 하기 싫은 눈오는 그 날 아침,

난 분명히 보았어요.

할머니가 마당쓰는 큰 빗자루로 엄마를 때리시려고 하니까

엄마가  앞마당 쪽으로 피했고

할머니는 엄마를 쫓아가다가

눈이 살짝 덮힌 빙판에 미끄러져 몸이 공중에 붕뜨더니

모퉁이 주춧돌 위로 떨어지는 것을 분명히 보았어요.

'퍽' 하는 소리와 '억' 하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어요.

말한마디 유언도 못하시고

할머니는 그렇게 뇌진탕으로 돌아가셨어요.

할머니는 눈을 부릅뜨고 돌아가셨어요.

염꾼이 두눈을 부릅 뜬 할머니 시체를 보고

눈을 감겨드리려고 손으로 눈을 감기면

다시 번쩍 뜨고 감기면 다시 번쩍뜨고 해서

'30년 염꾼 생활에 이런 시체는 처음본다. 단단히 한이 맺힌 모양이다' 라고 하셨대요.

결국 두 눈을 부릅뜨고 두 손을 꽉 움겨진 채 관 속에 들어가셨어요.

엄마는 모자가 죽은 재수없는 집에서

이사가라는 마을 사람의 말을 다 뿌리치고

속죄하는 맘으로 계속 사셨어요.

어린 나는 그 집이 싫어서 자꾸 이사가자고 조르면

엄마는 알아듣기 힘든 이상한 말씀만 하셨어요.

' 내가 여기서 속죄를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너는 제 명에 못살거야.

 널 위해서라도 난 여기를 떠날 수 없어. 크면 내말을 이해할 수 있을거야.'

어렸지만 엄마의 팔자가 세서

주변 사람들이 자꾸 죽어서 저런 말씀을

하시는가 보다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후 난 서울의 K대에 입학을 했습니다.

엄마는 그냥 그 집에서 살겠다고

고집하시는 통에 나 혼자 대학 기숙사에 왔습니다.

대학교 졸업반이던 작년

난 묘한 꿈을 꾸게 되고 그 꿈으로 인해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엄마가 할머니에게 머리채를 잡혀 질질 끌려가는 것이었어요.

난 ' 할머니 !  엄마를 놓아 주세요 ' 하며 울면서

할머니에게 막 뛰어 갔습니다.

그리곤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 할머니였는데

어느새 다른 사람의 얼굴이 되어 있고

끌려 가던 엄마는 어느새 할머니로 바뀌었습니다.

처음보는 귀신 같은 노파가 할머니의 머리채를 잡고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같이 떨어져 버렸습니다.

난 막 울었습니다.

그 때 천길 만길 낭떠러지 아래서

엄마가 흰 옷을입고

오른 손에는 하얀 올가미를 쥐고

왼손으로는 웬 여자의 머리칼을 잡고

기분나쁜 웃음을 남기고

하늘 높이 공중으로 휙 날아 올라가 버리시는 거예요.

난 엄마를 애타게 부르다가 꿈에서 깨었습니다.

참 무섭고 기분 나쁜 꿈이 었습니다.

꿈을 꾼 후 난 집으로 전화를 해 보았더니

엄마는 예전과 같은 건강한 목소리로 잘 지내신다고 했어요.

난 안심이 되었죠.

그 다음 토요일날 집에 갔다가 그 꿈 얘기를 했습니다.

엄마는 깜짝 놀래더니 내가 처음 보는 사진을 한 장 보여주면서 물었습니다.

' 혹시, 꿈 속에 할머니를 데리고 가던 노파가 이 할머니가 아니던 '

사진을 들여다 본 나는 숨이 콱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꿈 속의 그 노파였습니다.

'엄마 .. 맞아.. 이 할머니는 누구야 ..'

엄마는 한 숨을 길게 쉬면서 내게 감추어 두었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난 엄마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진속의 할머니는 아빠의 할머니였습니다.

나에겐 증조할머니지요.

증조할머니 역시 15살에 시집와 20살에 혼자되어 외아들에게

온갖 희망을 걸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외아들이 나의 할아버지죠.

나에게 할아버지가 되는

그 외아들을 장가보낸 후

증조할머니는 며느리인 할머니를 괜히 미워하고 구박했대요.

신혼의 단꿈도 깨기전 슬픈 일이 생긴 것이죠.

멀리 장사를 나간 할아버지께서 3년이 넘도록

소식이 끊겨 버리신 것이예요.

그러자 증조 할머니는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시다가

거의 실성하시고 말았대요.

증조 할머니는 수시로 발작하여

할머니에게 아들을 뺏아간 년이라고 욕을 하며

심하게 매질하시고

심지어는 흰 천으로 올가미를 만들어

할머니 닮은 인형을 목매달아 나무에 걸어 두기도 했다는 것이예요.

그 때 할머니는 너무나 무섭고 힘들어

여차하면 마시고 자살하려고 양잿물을

만들어 부엌 찬장에 숨겨 놓았대요.

어느 더운 여름날 증조 할머니는 발작하여

할머니를 심하게 때리고 괴롭힌 후

부엌 찬장에 있던 양잿물을 쌀뜨물로 착각하여 마시고는

피를 토하고 바로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할머니는 소식이 끊긴 할아버지가 돌아오기만 기다리며

어린 아들과 같이 외롭게 살아 오신거예요.

그 어린 아들이 아빠여요.

아빠가 결혼을 승낙 받으러 할머니에게 엄마를 데리고 왔어요.

그 때 할머니는 엄마를 보고 속으로 너무나 놀랐대요.

엄마의 이미지가 돌아가신 증조 할머니와 너무나 비슷했대요.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돌아가는 엄마의 뒷모습과 걸음걸이가

증조 할머니와 완전히 똑 같었대요.

그래서 할머니는 궁합을 핑계로

결혼을 결사 반대하셨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그렇게 미워한 것은

엄마가 증조할머니를 자꾸 연상시켰기 때문일거예요.

아니나 다를까 아빠마저 일찍 돌아가셨으니 3대가 과부가 된 셈이죠.

윤희에게서 내일 춘천행 기차표를 끊었다고 전화가 왔습니다.

그리고 엄마가 어떤 선물을 좋아하는지,

자기가 엄마의 마음에 들어야 할텐데 하며 걱정을 하더군요.

난 걱정말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지만

작년의 그 꿈이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올가미를 쥐고 웬 여자의 머리카락을 잡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윤희가 일전에 한 말도 괜히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 자기야, 난 눈오는 날이 좋아. 왠지 좋은 일이 생길거 같잖아.'

그리고 어제 윤희가 한 말이 더욱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

' 자기 어머님을 전화로만 인사드렸지만 왠지 낯선 사람 같지가 않았어.

 아주 좋으신 분같아. 어떤 일이 있어도 난 잘 모실 자신이 있어.'

난 내 목을 한번 쓰다듬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생명 보험이나 많이 들어둘까하는 생각을 하고 픽 웃고 말았다.

모든 것이 우연이겠지.

내가 너무나 과민 반응을 하는 걸꺼야 하는

생각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담배를 떨어뜨렸다.

돌아 가신 할머니처럼 윤희도 왼손잡이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