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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민국의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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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활동 / 대한 민국 정부 수립 / 건국 초기의 국내 사정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활동  

통일된 독립 국가 수립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 미.소 공동 위원회의 실패로 미국과 소련은 각기 남북한에서

별도의 분단 국가를 세우는 데 관심을 가집니다.

*또, 소련은 한반도의 공산화 노력으로 공산주의자들의 분열 책동과

무력 투쟁화가 심화됩니다.

*이에 이승만 등의 정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맞서

시급히 독립 국가 수립을 주장합니다.

 

미국은 한국 문제를 유엔에 상정합니다

*미국은 미.소 공동 위원회의 결렬로 한반도 문제를 유엔에 상정합니다.

*이에 유엔은 한국 임시 위원단을 구성하여 한반도에서 선거를 통하여

조속히 통일된 정부를 수립토록 결의합니다.

*소련은 유엔의 제안은 반대하고, 유엔 한국 임시 위원단의 북한 입북 거부로

유엔은 우선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만 이라도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하도록 결정합니다.

 

대한 민국 정부 수립

남한만의 단독 선거 실시를 결정합니다.

이는 남북한 총선거를 실시하여 통일된 정부를 수립하려는 유엔의 결의를

소련과 공산주의자들이 반대하자 결정합니다.

 

이에, 남북 협상이 추진됩니다.(1948년, 4월)

김구, 김규식 등은 남한만의 선거로 단독 정부가 수립되면

남북의 분단이 계속될 것을 우려하여 남북한이 협상을 통해 통일 정부를

수립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은 미.소간의 냉전 체제하에서 결국 실패로 끝납니다.

 

대한 민국 정부가 수립됩니다.

5.10 총선거를 실시합니다.

과정은, 제헌 국회를 개최하며 대한 민국 수립을 선포합니다.

(1945년 8월 15일 대통령 이승만, 부통령 이시영)

의의는, 유엔 총회의 승인으로 대한 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서 민족적 정통성을 가집니다.

 

건국 초기의 국내정세

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됩니다.

이는 소련의 한반도 팽창 정책과 북한에서 공산주의 정부가 사실상 수립됨으로서,

남한만이라도 자유로운 민주 정부의 수립이 절실히 요구됩니다.

 

남북 협상파는 총선거에 불참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북한의 공산화를 추구하는 데에

남북 협상파를 이용하려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의 남한 교란 사건이 일어납니다.

*제주도 4.3 사건(1948년, 4월)이 일어납니다.

이는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의 5.10 총선거를 교란시키기 위하여

일으킨 무장 폭동입니다.

*여수. 순천 10.19 사건(1948년 10월)이 일어납니다.

새로 수립된 대한 민국을 전복시키려는 의도에서

여수와 순천 지역에 주둔한 국군 내부에 침투했던 좌익 세력이

반란을 일으키고, 이 지역에 잠입해 있던 공산주의자들이

합세하여 일으킵니다.

 

이런 와중에 대한 민국은 민주 국가로서의 발전을 이루기 위한

기틀마련에 온 힘을 기울입니다.

* 우선, 반민족 행위 처벌법 제정과 반민족 행위 특별 조사 위원회를 설치합니다.(1948년,9월)

내용은, 민족 정기를 바로 잡고자 일제 시대에 친일 행위를 한 사람들의

처벌과 공민권을 제한합니다.

결과, 반공 정책을 우선했던 이승만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와 친일 세력의

방해 공작 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합니다.

*농지 개혁을 실시합니다.(1949년 6월 농지 개혁법 제정, 1950년 3월 일부 수정하여 실시)

내용은, 3정보를 상한으로 하여 그 이상의 농지를 유상 매입, 유상 분배한다는 것입니다.

결과, 소작농으로 시달렸던 많은 농민들이 자기 영토를 가지게 됨으로서

자영농이 증가합니다.